‘원자폭탄의 아버지’와 ‘군축(軍縮)의 아버지’라는 정반대의 두 별명을 가지고 있는 미국 물리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의 전기(傳記) 영화 ‘오펜하이머’가 15일 국내에서 개봉했다. 사전 예매율이 50%를 넘기면서 한국 영화들을 제치고 선두를 차지하며, 광복절 하루만 관객 수 50만명을 넘었다.
거장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의 첫 전기 영화로 주목받은 이 작품은 미국 등에선 지난달 이미 개봉해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세계 최초로 원폭 개발에 성공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끌며 2차 세계대전을 끝낸 영웅인 동시에 인류에 통제하지 못할 무기를 안긴 문제적 인물이라는 양면적 평가를 받는다.
크리스토퍼 놀런은 "핵폭탄 실험이) 지구 전체를 날려버릴 수도 있다는 아주 미세한 가능성을 인지했지만 그들은 발사 버튼을 눌렀죠. 저는 관객들을 바로 그 중대한 결정이 이뤄졌던 순간 속으로 안내하고 싶었습니다."라며 이 영화를 만든 이유를 밝혔다.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배우 킬리언 머피는 "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영화적 몰입감을 선사하는 작품이에요. 특별한 것은 이 세계에 관해 얘기한다는 것이죠. 인간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하는 영화입니다." 라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편, 영화가 흥행하면서 오펜하이머에 대한 재조명 및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데, 영화 소개와 함께 오펜하이머에 대한 몇 가지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노벨상 후보만 세 번…수상은 못해
오펜하이머는 역사가 인정하는 최고의 물리학자였지만 정작 노벨상을 받진 못했다. 노벨물리학상 후보에만 1945년·1951년·1967년 세 번 올랐지만 선정되진 못했다. 노벨상을 받기 위해선 통상 한 가지 분야를 집중해서 연구하고 그 분야에서 성과를 얻어야 하는데 오펜하이머는 여러 분야에서 나온 성과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종합해 또 다른 결과를 내놓는 일에 천재적인 인물이었기에 ‘노벨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편 그와 함께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한 동료 중 18명이 노벨상을 수상하게 된다.
○담배로 살고 담배로 죽었다
오펜하이머는 엄청난 애연가로 유명했다. 그의 사진이 대부분 담배를 물고 있을 정도다. 맨해튼 프로젝트 진행할 당시 그는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 몸무게가 50㎏(키 178cm)까지 빠졌는데 이 시기에도 담배만큼은 숨 쉬듯 피워댔다고 한다. 하루에 담배 100개비를 피웠다는 증언도 있다. 그의 입에 물려 있는 담배 ‘체스터필드’는 오펜하이머의 상징이 됐다. 그는 결국 인후암으로 세상을 떴다.
그가 유명해진 후엔 그를 따라 담배를 피우는 것이 청년들 사이에 유행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 역을 맡은 배우 킬리언 머피는 촬영 때 니코틴이 없는 허브 담배를 피웠다. 아울러 아몬드만 먹는 극단적 다이어트도 했다고 한다.
○뉴욕보단 뉴멕시코를 좋아했다
뉴욕 출신인 오펜하이머는 생전 가장 사랑하는 두 가지로 물리학과 뉴멕시코주(州)를 꼽았다. 유년 시절 여행한 뉴멕시코의 황량하고도 광활한 풍경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가 뉴멕시코주에 ‘본부’를 꾸린 것이 우연은 아니었던 셈이다.
‘맨해튼 프로젝트’란 이름은 미국의 2차 대전 참전 후 기반시설 건설 및 무기 생산 시설 구축 등을 위해 과학·공학자들을 대거 모은 육군 공병대의 연구 시설 중 상당수가 뉴욕 맨해튼 컬럼비아대에 있었던 데서 유래했다. 맨해튼에서 개발 자체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계획 초기에 맨해튼에서 초기 연구가 이뤄져 이후에도 ‘맨해튼 프로젝트’라는 암호명이 사용됐다.
○힌두교에 매료된 유대인
오펜하이머는 유대인이긴 했지만 유대교를 맹종하는 신자는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산스크리트어와 힌두교에 심취해 힌두교와 인도 문학에 대한 경외심을 자주 표현했다. 원폭 실험에 성공한 후 그는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며 자책했다고 하는데, 이 문구는 힌두교 경전 바가바드기타에 나오는 어구다.
오펜하이머는 하버드대 학부생 시절 산스크리트어를 공부하면서 힌두교 철학에 빠져들었다. 그가 전공한 물리학 분야인 양자역학과 우주 창조와 기원을 고찰하는 힌두교와 일맥상통한다는 평가도 있다.
1950년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촬영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왼쪽)과 로버트 오펜하이머 박사(오른쪽). 4년 뒤 오펜하이머 박사가 스파이 혐의로 청문회에 서자 아인슈타인은 “조국에 헌신한 대가가 이런 것이냐”고 분개했다고 한다